2025-06-13 | 첫 아이의 출생
article written on 2025-06-13
캐나다에 온 지 어느덧 1년 9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올해는 social도 줄여가며 열심히 분주하게 살고 있다. 초반에는 EpitopeGen 논문을 마무리 하고 재투고하느라 바빴고, 2~5월에는 Neurips를 목표로 논문 연구를 꽤 집중도 있게 진행하였다. 그 와중에 출산 예정일인 6월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에 따라 이사도 하랴 운전 연습도 하랴 바쁜 나날들이 이어졌다. 5월 말부터는 full time으로 육아 준비를 하였다. 출산 육아 대백과와 같은 책을 읽으면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지식도 충전하고, 아내와 함께 유투브 비디오를 보면서 신생아 육아법들도 조금이나마 학습하였다. 아이가 예정일보다 늦게 나올지 걱정이 되어서 매일 차라리 일찍 나와주기를 기도했다. 이 즈음에는 연구를 하기에도 애매하고 어딜 놀러 가기도 애매해서 그냥 산책을 많이 하고 주변 카페를 가서 출산 및 육아 얘기를 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밤에는 종종 와이프와 영화도 같이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출산 예정일 하루 전인가 WALL-E를 보았던 것 같은데 꽤 재미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예정일인 6월 3일이 되어서 아이가 살짝 늦게 나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새벽 3시 즈음에 잠에 잘 들지 못 하고 있던 차에 와이프가 양수가 터진 것 같다고 해서 바로 일어났다. 양수가 터지면 30분~2시간 이내에 반드시 병원에 가라고 들었던 것 같아서 긴장되었다. 갑자기 일이 터지니 생각보다 엄청 떨리고 다급해졌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미리 챙겨두었던 준비물 가방들을 확인하고, 휴대폰 배터리와 MSP 카드, 지갑을 챙겨서 집 밖을 나가 병원으로 향했다. 우리의 계획은 근처에서 EVO를 빌려서 내가 운전해서 BC Women's hospital까지 가는 것이었다. 근처에 EVO가 4개나 있었다. 그러나 첫 3개의 EVO는 조작감이 별로라서 빌리고 반환하기를 반복하였다. 이러는 중에도 시간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매우 조급했다. 다행이 마지막 4번째 EVO가 조작감도 좋고 안전한 것 같아 그걸로 병원에 가기로 했다. 새벽 시간이라서 도로에 차가 없어서 운전하기에 어렵지는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여 차를 대고 출산을 접수하는 곳으로 가서 등록을 했다. 이미 정보가 등록되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을 보고서야 드디어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양수는 터졌지만 자궁 수축이 일어나지 않았고 자궁 경부가 아직 부족하게 열려서 집으로 돌아갔다가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다. 양수가 흐르고 다시 EVO로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야 하는 여정은 약간 부담이었지만, 의사쌤의 조언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국 양수가 터져도 실제 출산까지는 꽤 오래 걸린다는 것. 그렇게 집에 가려고 했는데 태변 가능성을 발견해서 다시 의사쌤에게 말씀드렸더니 그런 경우에는 입원을 하고 유도 분만을 할 것을 추천하셨다. 이렇게 입원이 시작되었다.
유도 분만은 자궁 수축을 유도하기 위해 옥시토신을 주사한다고 한다. "와 이제 곧 정말 출산을 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실 이후로 12시간 정도 더 걸렸다. 입원을 하니 넓은 방을 하나 주시었다. 거기에는 침대, 소파, 의무기록, 컴퓨터, 샤워실, 비품함 등 모든 것이 있었다. 여기에서 옥시토신을 맞으며 기다리고 출산을 하는 것 같았다. 상주하시는 매우 친절한 간호사 분도 계셨다. 와이프는 의외로 침착하고 태연했다. 중간 중간 여러 의사 분들과 간호사 분들이 들어오셔서 체크를 해 주셨다. 무통주사 (epidural)도 맞기로 했다. 옥시토신을 맞고 3시간 가량이 지나니 와이프에게 조금씩 통증이 왔다. 계속 통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몇 분 주기로 규칙적으로 자궁 수축이 일어나는데 이때마다 통증이 느껴진다고 한다. 시간이 더 지나니 제법 통증이 심해져서 epidural을 맞기로 했다. 마취과 의사 분이 오셔서 척추 부분에 주사기와 관을 고정하고 물질을 주입하셨다. 이 과정도 한 30분 이상 걸렸던 것 같은데, 마지막에는 통증이 꽤 심했다고 한다. epidural을 맞고 20분이 지나니 통증이 마법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하반신에 얼음을 갖다 대어도 느낌이 없었다. 이렇게 자궁 경부가 10cm가 열려서 출산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별로 통증이 없다고 한다.
진짜는 이 때 부터이다. 자궁 경부가 10cm 열리면 힘을 주어 출산을 시작한다. 규칙적으로 자궁 수축이 올 때마다 힘을 주어야 한다. 남편인 나도 옆에서 와이프의 목을 받쳐주고 도와주어야 한다. 수축 한 번 당 3번씩 10초간 카운트를 하며 힘을 주게 된다. 의사 분들도 세 분이나 오셔서 계속 도와주신다. 여러 자세를 시도하고 가이드를 해 주신다. 이 과정이 무려 2~3시간 걸리는데, 이때가 제일 힘든 것 같다. 이 때는 통증이 꽤 있다고 한다. 특히 아이 머리가 나오기 시작하는 무렵부터는 무통 주사의 효과를 무시하는 큰 통증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출산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에 아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아이가 매우 작고 연약했기 때문에 난 부서질까봐 무서웠다. 무게도 재고, 의사 분들이 여러 검사도 해 주셨다. 이 날 밤부터 병원에서 나, 와이프, 아기 세 명이서 있게 된다. 물론 계속 간호사 분들이 오시면서 다양한 가이드로 주시고 체크도 해 주신다. 그러나 핵심은 출산 직후부터 모유 수유를 하고 24시간 모자동실을 하면서 애착 형성을 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육아를 공부하긴 했지만 실제 신생아를 곧바로 케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를 안고 드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무서운 상태였고 아내는 지쳐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물론 산후조리원도 없다. 좀 더 자연주의에 입각하여 자연분만, 모유수유, 모자동실 등을 추구한다. 그래도 다행이 간호사 분들이 성심성의껏 교육을 시켜주신다. 아이를 드는 방법, 모유 수유를 하는 방법, 기저귀를 가는 방법, 침대에 눕히고 재우는 법 등. 아이는 물론 계속 울기 때문에 병원에서의 이틀밤은 생각보다 고되었다. 나도 잠을 제대로 잔 지 하루가 넘은 상태에 신생아는 2~3시간마다 계속 수유를 해 주어야 하고, 남편은 아내를 케어하면서 음식과 물, 따뜻한 수건과 같은 물자를 계속 운반해야 하고, 간호사 분들과 소통하고 통역해야 하고, 기념 사진들도 남겨 놓고, 등등 할 일이 적지 않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옆에는 세상에 나온지 몇 시간 밖에 되지 않은 아이와 출산 직후인 아내가 있기 때문에 열심히 버텼다. 3일째 낮에 퇴원을 하였다. 3일 동안 수면박탈을 경험했기 때문에 제대로 운전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지만 어찌저찌하여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후 출장 산후 조리사 선생님이 오셔서 도와주시었고, 나와 아내도 아이를 계속 케어하면서 빠르게 육아 능력이 늘었다. 이제 10~11일 정도가 되었는데, 이제는 제법 1명이서도 아이를 케어할 수 있게 되었고, 효율적으로 육아하는 방법도 배우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직접 모유수유는 정말 어렵다. 아이가 울 때에 그 니즈를 파악하는 것도 아직 서툴다. 그러나 잊지 못할 경험을 한 것 같고, 귀엽고 건강한 아이가 나와주어서 너무 감격이고 감사하다. 건강하게 잘 키워야겠다.